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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조치 (집념, 희귀질환, 신약개발)

by sweetonion 2026. 5. 31.

포기하지 않는 것이 언제나 옳은 선택일까요? 저는 한동안 이 질문을 꽤 진지하게 붙잡고 있었습니다. 영화 한 편과 제가 직접 목격한 어느 선배의 이야기가 겹쳐 보이던 날부터였습니다. 현실의 무게 앞에서 끝까지 버텨낸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정말 '옳았는지'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집념이 만든 기적, 그 이면의 선택

뉴저지에 살던 존 크롤리는 둘째 딸과 막내아들이 폼페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안 뒤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폼페병(Pompe disease)이란 리소좀 저장 장애의 일종으로, GAA 효소 결핍으로 인해 글리코겐이 근육 세포에 비정상적으로 축적되는 희귀 유전 질환입니다. 쉽게 말해 몸속 근육이 서서히 기능을 잃어가는 병인데, 특히 심근과 횡경막까지 침범하면 자가 호흡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당시 존의 딸이 정확히 그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논문을 뒤지다 로버트 스톤힐 박사의 연구를 발견했습니다. 스톤힐 박사는 폼페병의 핵심 원인인 산성 알파 글루코시다제(GAA) 유전자를 클로닝하는 데 성공한 인물이었습니다. 여기서 유전자 클로닝(gene cloning)이란 특정 유전자를 분리·복제하여 대량 생산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기술을 말합니다. 이 기술이 없으면 치료용 효소를 충분한 양으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존은 이 연구가 자녀들을 살릴 마지막 열쇠라고 확신했고, 직접 재단을 설립하고 끝내 회사까지 차렸습니다.

여기서 저는 조금 다른 시각도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저 정도면 무모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 무모함이 계산된 확신이었다는 점에 더 눈이 갔습니다. 현실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거든요.

희귀질환 연구의 구조적 한계

폼페병처럼 환자 수가 적은 질환은 제약 산업의 시장 논리 안에서 만성적인 자금 부족에 시달립니다. 스톤힐 박사가 연구비 지원이 끊기고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희귀질환 치료제를 가리키는 오펀 드럭(Orphan Drug)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오펀 드럭이란 시장성이 낮아 민간 제약사가 개발을 기피하는 희귀 질환 치료제를 말하며, 각국 정부는 이를 개발하는 기업에 세금 감면이나 독점 판매권 같은 인센티브를 부여합니다.

미국 FDA의 희귀의약품 지정(Orphan Drug Designation) 제도가 대표적입니다. 이 제도는 1983년 오펀 드럭 액트(Orphan Drug Act) 제정 이후 희귀질환 신약 개발에 중요한 동력이 되어왔습니다(출처: FDA 희귀의약품 제도). 그러나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도 임상 시험(Clinical Trial)에 진입하기까지의 장벽은 여전히 높습니다. 임상 시험이란 신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사람에게 직접 검증하는 단계적 시험 절차를 말하며, 이 단계에 도달하는 데만 막대한 시간과 자금이 필요합니다.

제가 직접 지켜본 지방 스타트업 선배의 경우도 비슷한 구조였습니다. 기술의 가능성은 분명했지만 투자자들은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영화 속 조지 랜슬러가 "6개월 안에 성과가 없으면 매각"이라고 압박하던 장면과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자본의 논리와 연구의 속도가 충돌하는 구조는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희귀질환 연구가 처한 현실적인 장벽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환자 수가 적어 임상 시험 대상자 모집 자체가 어렵습니다.
  • 시장성이 낮아 민간 투자 유치에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 연구 기간이 길수록 투자자와의 갈등이 깊어집니다.
  • 제도적 지원이 있어도 실제 연구비까지 연결되는 과정이 복잡합니다.

신약개발 과정에서 드러난 집념의 실체

자이머진(Zymagen)에 회사를 매각한 뒤에도 존 크롤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솔직한 장면이라고 봤습니다. 대기업 구조 안에서 부사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어도, 자녀를 임상 시험에 참여시키려는 시도는 "이해 충돌"이라는 이유로 막혔습니다. 이해 충돌(Conflict of Interest)이란 의사결정자가 개인적 이익을 가질 경우 공정한 판단을 방해할 수 있는 상황을 말하며, 신약 개발의 윤리적 기준에서 매우 민감하게 다뤄집니다.

연구팀 간의 경쟁 구도 설정 문제도 흥미로웠습니다. 네 가지 효소 후보를 색상 코드로 구분해 블라인드 방식으로 비교 검증하는 방식은, 연구 편향을 줄이기 위한 이중맹검(Double-blind) 구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중맹검이란 연구자와 피험자 모두 어떤 처치를 받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실험을 진행하는 방법으로, 결과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됩니다. 스톤힐 박사가 결국 자신의 이론이 제조 효율 면에서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을 때, 저는 그 장면이 집념과 과학적 객관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연구자의 본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선배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가 프로토타입 검증에 성공하기까지 1년 반 동안 야전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기술 명세서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주변 모든 사람이 폐업을 권유하던 상황에서 그가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기술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두 가지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결과에서 완전히 갈립니다.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게 언제나 정답일까

집념을 미화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부분에서 독자분들과 솔직하게 토론해보고 싶습니다. 존 크롤리는 결국 성공했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집념이 기적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저렇게까지 버텨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물음이 틀리지 않다고 봅니다.

국내 희귀질환 환자 수는 약 35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 중 치료제가 개발된 질환은 전체의 5%에 불과합니다(출처: 국립희귀질환센터). 이 숫자가 말해주는 건, 존 크롤리 같은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 길이 얼마나 험한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집념이 기적을 만드는 조건이 있다면, 저는 두 가지를 꼽겠습니다. 첫째는 검증 가능한 확신, 둘째는 혼자 버티지 않는 구조입니다. 존 크롤리에게 스톤힐 박사가 있었고, 선배에게는 끝까지 남은 개발자 한 명이 있었습니다. 혼자서 타오르는 집념은 쉽게 소진됩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버티는 집념은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집념이 아름다운 이유는 결과가 좋아서만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타협하는 지점에서 한 걸음 더 내딛는 그 선택 자체가, 제가 보기엔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진한 용기처럼 보입니다. 영화 속 이야기든, 현실의 선배 이야기든, 그 뒷모습을 목격한 기억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습니다. 혹시 지금 포기의 기로에 서 있는 분이 계시다면, 한 번쯤 다시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이게 고집인가, 확신인가"라고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2_8e3lOy1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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