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한동안 이 영화를 그냥 스포츠 성공담으로만 봤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시 틀었더니, 화면 속 인도 소년들의 눈빛이 자꾸 예전의 저와 겹쳐 보이는 겁니다. 전공도, 경험도 없이 글로벌 프로젝트에 지원하겠다고 손을 들었던 그 시절. 겁은 났지만 멈출 수가 없었던 그 감각. 영화 밀리언 달러 암은 그 감각을 정확하게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무모한 도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에이전트 JB는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인도의 크리켓 인구 10억 명을 야구 팬으로 전환하겠다는 발상, 1년 안에 시골 출신 소년 두 명을 메이저리그(MLB) 유망주로 만들겠다는 목표. MLB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ajor League Baseball)의 약자로, 미국과 캐나다에 기반을 둔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야구 리그를 뜻합니다. 야구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소년들을 그 무대에 세우겠다는 건, 말 그대로 근거 없는 배짱이었습니다.
저도 비슷했습니다. 주변에서 "경력자도 다 떨어지는 데를 왜 사서 고생하냐"고 했을 때, 저한테 딱히 반박 논리가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여기서 포기하면 평생 내 한계를 '여기까지'라고 단정하며 살 것 같다는 느낌, 그 하나뿐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영화 속 JB도 처음엔 순수한 열정보다 사업적 계산이 앞섰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무모한 도전이 실제로 굴러가기 시작하면, 처음의 동기가 무엇이었든 간에 현실의 무게가 사람을 바꿉니다. 인도 현지에서 픽업도 안 오고, 세관 문제에 뇌물 요구까지 맞닥뜨리면서 JB는 계획과 현실의 간극을 몸으로 배웁니다.
무모한 도전을 앞두고 있다면, 제 경험상 이것만큼은 확인해두는 게 좋습니다.
- 실패했을 때 감당 가능한 최악의 결과가 무엇인지 미리 상상해볼 것
- 나를 밀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지 확인할 것
- 처음 3개월은 성과보다 루틴(routine), 즉 매일 반복할 수 있는 기본 훈련 체계를 먼저 만들 것
세 번째 항목이 특히 중요합니다. 영화에서 링쿠 싱이 83마일의 완벽한 스트라이크를 던지기까지, 수없이 많은 반복 투구가 있었습니다. 스카우트 레이가 처음엔 "아직 미숙하다"고 평가했던 소년이, 일관된 투구 메카닉스(pitching mechanics)를 갖추면서 달라졌습니다. 투구 메카닉스란 공을 던질 때 몸의 각 부위가 연동되는 동작 원리를 의미하는데, 이게 무너지면 아무리 강한 팔힘도 구속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반복이 형태를 만들고, 형태가 결과를 만든다는 건 스포츠든 업무든 다르지 않았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자기효능감이란 특정 과제를 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뜻하는데, 연구에 따르면 이 믿음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성공 경험의 누적을 통해 형성됩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링쿠가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하기까지, 매번의 소소한 개선이 쌓인 것처럼요.
실패 이후,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었던 이유
사실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강하게 반응했던 장면은 성공 순간이 아니라 첫 번째 MLB 트라이아웃이 무너지는 장면이었습니다. 트라이아웃(tryout)이란 프로팀 스카우트들 앞에서 실력을 검증받는 공개 선발 테스트를 말합니다. 수십 명의 스카우트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극도의 긴장감에 짓눌린 소년들이 연속 실수를 범하고, 결국 트라이아웃 연장 불가 통보를 받습니다.
그때 JB가 뱉은 말이 있습니다. "이건 아이들의 실패가 아니라 내 실패다." 저는 이 대사에서 한동안 멈칫했습니다. 제가 처음 프로젝트 중간 평가에서 기대 이하의 결과를 받았을 때, 저도 모르게 환경 탓, 시간 부족 탓을 먼저 했거든요. JB가 그 순간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장면은, 보는 사람 입장에서 꽤 불편하게 와닿았습니다.
실패 이후 재기를 가능하게 한 요인을 영화는 두 가지로 보여줍니다.
- 외부의 두 번째 기회: 해적단(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수석 스카우트 월터 샤피로가 소년들의 원시 잠재력(raw potential)을 알아봤습니다. 원시 잠재력이란 아직 세련되게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근본적인 신체 능력이나 재능이 높은 상태를 뜻합니다. 스카우팅 분야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으로, 이런 선수를 발굴하는 것이 스카우트의 핵심 역량입니다.
- 내부의 태도 전환: JB가 비즈니스 우선에서 선수 중심으로 방향을 바꾼 것. 톰 하우스 코치가 강조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선수가 지지받는 느낌을 갖는 것이 훈련 효과보다 먼저라는 것. 스포츠 심리학 연구에서도 선수의 내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가 외적 보상보다 장기적 퍼포먼스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출처: 대한체육회 스포츠과학연구원).
제가 직접 겪어보니, 두 번째가 훨씬 어렵습니다. 실패하고 나면 자존심이 작아지고, 다시 도전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리스크처럼 느껴집니다. 그때 저를 붙잡아 준 건 거창한 전략이 아니라, "그래도 한 번만 더 해보자"고 옆에서 말해준 사람 한 명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레이가 실망한 JB에게 조용히 찾아온 것처럼요.
두 번째 트라이아웃에서 링쿠 싱이 공을 던지기 직전, 코치가 했던 말은 단순합니다. "야구 선수로서의 꿈을 기억해라." 구속이나 각도나 그립 같은 기술 지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결국 왜 시작했는지를 기억할 때 가장 단단해집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무모함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부딪혀보지 않으면 자기 안의 가능성이 어디까지인지 영영 모를 수 있다는 것. 지금 어떤 도전 앞에서 망설이고 계신다면, 일단 글러브를 끼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처음엔 거꾸로 끼더라도 괜찮습니다. 링쿠도 그랬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