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한 편이 제 머릿속에서 3년째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작비 2,100만 달러를 들였지만 전 세계 흥행 수입은 1,300만 달러에 그쳤던 영화, 그러나 덴젤 워싱턴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2017년 작 '로만 J. 이스라엘, 에스콰이어'입니다. 흥행 실패라는 숫자 뒤에 숨어 있는 이 영화의 진짜 질문은 하나입니다. 신념을 끝까지 지키는 삶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건지.
신념이 부서지는 순간
영화 속 로만은 법조계에서 보기 드문 인물입니다. 그는 공익 소송(Pro Bono Litigation), 즉 수임료 없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진행하는 소송에 평생을 바친 변호사입니다. 여기서 공익 소송이란 경제적 이익보다 법적 정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소송 형태로, 수임료를 받기 어려운 의뢰인을 위해 변호사가 자발적으로 비용을 감수하는 구조입니다. 미국 변호사협회(ABA)에 따르면 미국 변호사의 연간 공익 소송 권장 시간은 50시간이지만, 실제로 이를 충족하는 변호사는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출처: 미국변호사협회).
로만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기준을 아득히 넘어, 365일 내내 그 방식으로만 살아온 사람입니다. 제가 한 인권 단체와 연대해 활동하던 시절, 실제로 이런 분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항상 유행이 지난 정장을 입고, 판례와 법조문이 빽빽이 담긴 낡은 가방을 들고 다니던 노변호사님이었습니다. 그분은 부당해고 노동자와 빈민들의 사건만 맡으셨는데, 동료 변호사들 사이에서 '돈 안 되는 이상주의자'로 불리며 조용한 따돌림을 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정의를 외치는 집단 안에서도 정의로운 사람이 소외된다는 사실이.
영화에서 로만의 신념이 무너지는 계기는 갑작스럽지 않습니다. 평생 의지해온 파트너의 쓰러짐, 사무소의 인수, 구직 실패, 그리고 조금씩 스며드는 경제적 압박. 이 누적된 피로 앞에서 로만은 드렐 사건의 현상금 정보를 제보하고 돈을 받습니다. 법조 윤리에서 이를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이라 부릅니다. 쉽게 말해 변호사가 의뢰인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행위로, 변호사 징계 사유 중 가장 중대한 항목 중 하나입니다. 로만은 그 선을 넘었고,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타협이 부르는 대가
로만이 현상금을 손에 쥔 직후 한 일이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그는 고급 아파트로 이사하고, 새 옷을 사 입고, 해변에서 도넛을 먹습니다. 평생 누리지 못했던 사소한 일상의 쾌락들입니다. 이 장면이 저는 가장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게 너무 인간적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타협 하나가 어떤 결과를 부르는지 알면서도, 눈앞의 편안함에 손을 내밉니다. 제 경험상 이건 의지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랫동안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삶을 유지하는 데는 엄청난 심리적 자원이 소모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아 고갈(Ego Depletion)이라고 부릅니다. 자아 고갈이란 의사결정과 자기통제에 사용되는 인지적 에너지가 반복 사용으로 점차 소진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로만이 결국 무너진 건 나약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간 혼자 감당해온 도덕적 긴장감이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타협의 대가는 냉혹합니다. 현상금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고, 로만은 조직범죄의 표적이 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고발하기로 결심하고, 자신을 직접 기소하겠다는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골목에서 총에 맞습니다. 그 선택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지만, 동시에 그를 다시 로만으로 돌려놓았습니다.
로만이 자신의 타협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얻은 것: 새 아파트, 새 옷, 잠깐의 일상적 편안함
- 잃은 것: 평생 지켜온 법조 윤리, 의뢰인에 대한 신의,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
- 최종 결과: 자기 고발이라는 도덕적 회복, 그리고 죽음
고독한 신념이 남기는 것
영화의 진짜 결말은 로만의 죽음이 아닙니다. 로만의 신념이 조지를 바꿔놓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조지는 성공한 기업형 변호사로서, 로만의 7년짜리 취지서와 300명의 동의서를 담은 가방을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하지만 로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의 죽음을 목격한 뒤 조지는 달라집니다. 이것이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하는 부분입니다.
제가 활동하던 시절 봤던 그 노변호사님도 비슷한 방식으로 영향을 남기셨습니다. 그분이 밤을 새워 혼자 완성한 수백 페이지짜리 변론서가 법정에서 낭독되는 순간, 저는 전율했습니다. 그 낡은 안경 너머로 조용히 법의 정의를 읽어 내려가는 뒷모습은, 제가 법조계 주변에서 목격한 가장 아름답고도 쓸쓸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분이 그날 이긴 것인지 졌는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무언가를 느꼈다는 것은 압니다.
신념을 끝까지 지키는 삶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공익 목적의 법률 지원 수요는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를 수행하는 변호사 비율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시스템이 개인의 신념을 감당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는 영화 밖 현실에서도 반복됩니다.
로만이 선택한 자기 고발은 단순한 참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이 어긋났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시스템의 논리가 아닌 자신의 원칙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그 선언은 죽음으로 끝났지만, 조지라는 사람 안에서 계속 살아 움직입니다.
어딘가에 또 다른 로만이 있다면, 부디 조금은 따뜻한 세상에서 싸우고 있길 바랍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자신의 신념이 어디에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고 싶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제 역할을 다한 것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관람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법률 조언이 아닙니다. 법적 판단이 필요한 경우 반드시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